* 준훈
“저번에도 한동안 사라졌었잖아. 그런데 또 어딜 간다고?”
“미안해요. 그래도 겨우 며칠이었는데, 이번에도 얼마 안 걸릴테니 좀 봐줘요.”
“뭐랄수는 없지만······ 이제 슬슬 방학철인데. 너 없음 나 바빠서 어쩌냐.”
사장의 투덜거림에 문준휘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다음달엔 자기가 책임지고 일을 하겠다는 둥, 청소도 자기에게 맡겨두라는 둥 시덥잖은 위로를 지껄여댔다. 그렇게 지킬지도 모를 약속을 한 보따리 넘게 풀어놓았을 즈음에야 사장의 불만이 잦아들어 문준휘는 금방 돌아올테니 걱정 말라는 인사를 한 마디 건네고는 가게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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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간 지내던 오피스텔 키를 반납하며 문준휘는 점차 웃음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자고 이런짓을 할까. 짐 보따리도 없이 홀홀 단신으로 아무 그늘가에 걸터앉으니 제법 찬 바람이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 차가운 물, 그리고 바다.
말도 안되는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느덧 그가 떠나오던 봄 날 직전까지 이르렀다. 머릿속에 바다가 출렁였다.
어찌보면 넉 달 내내 자신의 머릿속에 출렁거리는 것이 그 날 그 때의 바다였다. 사소한 실수로 포장 되었지만 그건 명백한 자신의 의지였다. 더럽게 재수없는 날 뭔가 핀트가 나갔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랬다.
어쩌면 애써 모르는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됐다. 생각을 말자. 머릿속 가득 출렁이는 바다를 애써 몰아내며 문준휘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시도때도 없이 곱씹기엔 유쾌하지도 않은 기억이었다. 하여 별로 기억해내고 싶지 않은.
[—먼저 놓아주지는 않을건데.]
불현듯 떠오르는 누군가의 말에 잠시 사그라들었던 웃음이 다시 피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할까. 이지훈은 참 투명한 편인데도 파악하기가 힘든 유형의 사람이었다. 파악하기 힘들다는 건 곧 대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어느때부턴가 문준휘는 철저한 준비 없이는 타인을 대하지 않는 상당히 기이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준비가 통하지 않는 예측불허라는 것을 그는 어려워했다.
‘헌데 묘하게 자꾸 생각이 나네.’
그건 정말이지 우습고도 우스운 경우라 저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출 길이 없어 문준휘는 한참을 웃어제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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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다 달려 나온건지 아니면 저녁거리를 사러 마트라도 가는 길이었던 건지 어느쪽이든 굉장히 편한 차림을 한 이지훈이 저만치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이야.’ 인사하는 문준휘를 본 체 만 체 손도 한번 흔들어주지 않고 뛰어온 이지훈은 이내 코앞에 멈춰서서 그저 뚫어져라 문준휘를 쳐다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 무슨 배짱으로 이딴 짓을 한건지, 넉 달째 어디 처박혀 있다가 이제야 연락인지. 참았던 말을 마구 쏟아내는 이지훈은 얼굴을 보며 문준휘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겨우 눈이랑 코 입 있는 얼굴 하나로 그렇게 많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거 놀랍네.”
“넉 달째 연락 두절이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하는 소리가 겨우 그거냐?”
“나, 돌아가려고.”
사실 멋대로 뛰쳐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돌아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별 대책도 생각도 없이 그저 계약해지 통보받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했었는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나마 하는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불쑥 그런말이 나와버린거다. 아차하는 사이 자신이 내뱉은 말에 문준휘가 더 놀랐지만 이지훈은 미간을 찌푸렸을 뿐 어째서냐 왜인거냐 같은 뻔한 반문은 하지 않았다.
“돌아 온다고?”
“지금 막 정했어.”
“그럼 왜 나갔던건데?”
두 번째 질문은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머릿속은 곰곰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데 입이, 혹은 이성에 앞선 본능이 먼저 대답했다.
“타인과 친해져서 그 타인이 지인이 되는게 싫어서.”
동의도 반박도 없이 가만히 쳐다보는 시선만이 느껴졌다. 횡설수설 변명을 이어가려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엉겹결에 나온 말이지만 그것은 번복할 여지 없는 진실이었다. 문준휘는 억지로 끌어올렸던 입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불에 뛰어드는 나방을 보면 멍청하기 그지 없다고 생각해. 근데 내가 지금 그러고 있어.”
“뭔가 계기라도 있었냐?”
“그런게 아닐까.”
이지훈이 문준휘를 뚫어져라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난. 지금도 솔직히 널 이해 못하겠어.”
“난 살면서 누군가를 고의로 울려본 적은 없어. 어쩌다 실수해도 그랬던 적도 없고. 싫어하거든, 갑작스레 누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정신이 산만해지는 것도 있고, 울고 웃고 하면서 누군가랑 가까워지는 것도 싫고.”
“그건 네 성격이 예민하다는 반증이지.”
툭 내던지는 듯한 이지훈의 말에 문준휘가 어설프게 웃었다.
“그냥 그렇다고.”
“그래서 뭐, 사사건건 잔소리 하는 내가 부담스럽고 짜증나서 튀었다는 말이 하고 싶은거야?”
질문이 나가기가 무섭게 정면을 향해있던 문준휘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이상하게 그렇지가 않더라고.”
이건 또 뭔 소린지. 이지훈은 부담스러운 눈빛을 애써 흘려내다 문득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어딘지 이지러진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나를 걱정하고, 울고, 때로는 화내는 그 모든게 좋았던 적이 없었어. 그건 그 자체로 부담이고 짐이니까. 그런데ー”
희안하게도 싫지 않더라고.
나로 인한 감정이 떨어져 내리는게, 도리어 나에게는 기쁨이 되었다는 것.
“그래서 나왔어. 아직 내 안에 그런 이기적인 감정이 살아 있는줄은 몰랐거든.”
맺는 말 끝에 문준휘가 슬며시 웃었다. 이지훈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복잡한 표정으로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채 일년을 채우지 못한 11개월은 누군가를 단정짓기에는 너무 짧았다. 서로 만나기 전 과거를 시시콜콜 다 털어놓은 적은 없었기에 지금처럼 과거에 침잠한 감정에 기반한 심경을 토로하는 문준퓌가 참으로 낯설었다.
“내 몸뚱아리 하나를 건사하고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힘들었어.”
신이 내린 천재.
배우 문준휘를 한마디로 굳이 정의 해야 한다면 누구든 그리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만으로도 완전해질 수 있다는 건 곧 타인과의 단절을, 세상에 대한 회의감을 키우는 요인이었다. 해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타인과의 단순접촉도 힘겨웠다. 결국 생은 혼자 살아가다 혼자 죽는 것이고, 타인과의 교감은 상실이라는 전제를 안고 시작되는 것. 지독히도 편협하게 그는 살아왔었다.
“만남이 곧 이별의 전주곡이고, 믿음이 곧 좌절이며, 나에게 남은 언제고 나를 이용하고 버릴 사람들뿐이란걸 오래전에 알았어. 그래서 도망친거야. 믿을만한 사람도 결국은 헤어질 뿐이란걸 아는데 하물며 생판 남인 사람이랑 얽히고 싶지 않아서.”
“······.”
문준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뭔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 같았다. 감히 해서는 안될 이야기를 그는 너무나도 쉽게 옆에 앉은 이에게 풀어놓고 있었다.
“살고 살아 어찌 살아가도 결국에 남는거 나 하나뿐이라는 걸 지금도 잘 알아. 그런데도 돌아가고 싶어하고, 한번 더 믿어보려고 하고 있어. 일부러 상처받을 짓을 할 필요는 없는데. 촛불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왜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싶어 하는지.”
“그래서 결론이 뭐야.”
이지훈의 물음엔 대답도 없이 문준휘는 앉은 자리에서 발을 몇 번 굴렀다. 신발바닥으로 바닥을 문지르고, 끄트머리로 파헤치고, 찰나보다는 길고 잠깐보다는 짧은 시간동안 그러다가 불쑥 말했다.
“—먼저 놓아주지는 않을거라고 했지.”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문준휘는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네가 날 이미 끌어낸 거 같아.”

이런 사진을 올려줘서 다들 헤어질 결심을 생각하는 동안
나도 잠깐 상상함… 천부적인 재능으로 타고난 배우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살았지만 이제 더 이상 ‘내’ 가 없는 타인으로 살고 싶지 않아진 배우 준이랑 (그렇다고 다른걸 뭐 해야할지도 알지 못하는) 기회랑 때가 안 맞아서 가난한 음악 하고 있는(그러나 아직 꿈을 먹고 사는데 지치지 않은) 작곡가 훈(정도의 설정만)
나머지는 보고 싶었던게 다 본문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연히 기승전결이 없으니까 단상에 버려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