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외인간 토묘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그들의 힘은 더 강해진다. 그러나 준휘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맨손이었다. 있는 거라곤 책가방와 에어팟, 그리고 핸드폰뿐이다. 가방이라도 날려야하나 폰으로 찍어버리기라도 해야하나······ 생각하다 괜히 설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평범한 인간이 뱀파이어 상대로 뭘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했다.
“······형, 눈.”
긴장을 애써 감추며 준휘는 일부러 조금 세게 말했다. 얼핏 보기에는 평소 같은 모습이었다.
“아, 미안.”
너무 오랜만이라. 정한이 씩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핏빛처럼 붉게 물들었던 눈동자는 평소 예쁜 연갈색으로 돌아왔고, 너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에 준휘는 맥이 풀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평소와 달리 뾰족해진 송곳니가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정한의 눈은 굶주린 뱀파이어 특유의 이성 잃은 이채로 빛나는 눈이 아니었다.
“의심하는 거 이해해.”
“전 아무말도 안했어요.”
“최근 일어난 습격에 대해서는 들었어. 목을 물렸다는 것도. 출혈이 심했다는 것도. 그래서 이거 내가 잡아야 하나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걸 왜 형이 잡아요? 여기 형 구역도 아니라면서.”
“그거야 뭐, 준휘 네가 있으니까.”
사실 정한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로 움직이는 야매 사냥꾼이라 협회 소속처럼 담당 구역은 있지도 않았다. 애초에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것들을 처리하다 보니 알음알음 동족 사냥꾼이라고 알려진 것 뿐이었다. 그런 사정을 준휘에게는 다 말하지 않았기에 대충 둘러댔다.
“명호는 뭐래?”
“귀찮다고 참견하고 싶지 않다던데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준휘의 말에 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비즈니스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명호가 이 일에 손대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런데 형은 진짜 어떻게 피를 수급해요?”
문득 궁금해진 준휘가 물었다. 필수는 아니라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필요하다면서. 준휘가 관심을 보이자 정한이 다른 의미로 눈을 빛냈다.
“이제 나를 위한 수혈팩이 될 마음이 들어?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지금 제가 장난치는 걸로 보여요?!”
정확히 숨골을 노려서 쳤으므로 일반인이라면 끽 소리도 못하고 기절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눈물을 한방울 달고서도 단순히 아프다고 빽빽 댈 기운이 있는걸 보면 역시 인간이 아니구나 싶었다.
준휘의 서슬퍼런 기색에도 정작 어떻게 살아왔냐는 질문에 정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마 싶었지만 그래도 생각나는건 딱 하나뿐이었다. 다른 사람의 피를 취하지도, 계약도 하지 않은 뱀파이어가 취할 방법이래봤자 사실 뻔하다.
“유난히 상처가 잦았던거, 그런 이유죠.”
“······어쩔 수 없잖아.”
아무나 잡아다가 목을 뜯을 수는 없으니까. 물끄러미 보는 가라앉은 눈이 어쩐지 멀었다.
뱀파이어는 세간이 퍼진 편견과 달리 무분별한 흡혈충동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의외로 생존에 필요한 혈액량 자체는 많지 않다. 요는 피를 빠는 그 행위인 것인데, 급할때는 제 피를 빠는걸로 연명하는 놈들도 있긴 했지만 정한이 그럴 사람······ 아니 뱀파이어는 아니고. 머리를 굴리던 준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아무데서나 픽픽 쓰러지고 했던게 전부—.”
“그건 그냥······ 으음 그런걸로 해둬.”
이건 또 뭔 소리지. 도끼눈을 하고 노려봐도 정한은 입을 열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다른 이유가 마땅히 생각나지 않아 허탈한 한숨을 토해냈다. 정한 역시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여지껏 보인 행동이 모두 준휘 네 관심을 끌기 위한 연기였다고 말할 수는 없았다. 그야, 어느정도는 정말로 배가 고파서 그런것도 맞는데.
정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턱이 없는 준휘가 손을 비볐다. 방금전까지 긴장했던게 마치 거짓말 같다. 이렇게 허술한데 어떻게 안 들켰지?
短
전야